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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레이블, 판매직원의 조언,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대충 어떤 와인인지 짐작하게 된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게 바로 병 모양이다. “딱 보면 견적이 바로 나와!”라고 와인병은 직관적으로 와인의 품종, 종류 등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소스다. 엇비슷해 보여도 전통을 잇거나 마케팅 수단으로 기획되는 등 와인병은 다양하다. 지금부터 와인병이 말해주는 사연에 대해 알아보자.
유리병에 와인을 담기 시작한 때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에는 나무통이나 점토로 만든 항아리, 암포라에 담았다. 유리병과 함께 코르크 마개의 도입은 와인산업에 획기적인 발전을 불러왔다. 초창기 와인병의 목은 짧고 몸통은 넓으며 두꺼웠다. 이후 유리 제조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1800년대엔 요즘의 와인병과 비슷해졌다. 와인병과 레이블은 생산자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이다. 기능적인 면에선 자외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와인병을 진한 색상으로 만들었고 일부 화이트와 로제 와인은 투명한 병에 넣기도 했다.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병>
샴페인을 비롯해 전통적인 방식(거품을 만드는 2차 발효를 병 속에서 진행함)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모두6-7 기압이기 때문에 이를 견디기 위해 병은 두껍고 무겁다. 병을 들었을 때 샴페인에 비해 가볍다고 느꼈다면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탱크 방식(2차 발효를 거대한 탱크에서 함)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다. 2-4 정도로 기압이 낮아서 덜 무거운 병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마케팅을 고수하는 샴페인의 경우, 레이블이 화려하고 상자까지 챙겨준다.
샴페인 병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샴페인 크리스탈 Cristal에 관한 것이다. 1776년에 설립된 루이 로드레 Louis Roederer社는 러시아 시장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는 다른 귀족들과 같은 샴페인을 마시기 싫어했다. 그래서 황제 전용의 최고급 샴페인을 만들 것을 루이 로드레에 의뢰하며 병 또한 남달라 보일 것을 요구했다. 일설에 의하면 황제는 암살 위험에 시달려서 병은 투명하고 흉기 등등을 숨길 수 있는 바닥 펀트도 없애길 원했다. 드디어 1876년에 최고 샴페인, 크리스탈이 탄생했다. 황제의 요구대로 투명한 크리스털로 병을 제작했고 병 바닥도 평평하다. 레이블 또한 황금색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어 ‘황제의 샴페인’다운 디자인으로 보인다. 맛은? 너무 오래전에 마셔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저절로 엄지 척을 하게 되는 맛이라고 한다.
<보르도 와인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양의 와인병이다. 보르도 뿐만 아니라 루아르, 남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등 신대륙에서도 이용한다. 이런 모양의 병이라면 와인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쉬라즈(시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르도 품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말벡, 까르미네르 같은 레드 와인은 진한 녹색의 보르도 와인병을 이용한다. 화이트 와인인 소비뇽 블랑, 세미용은 투명한 보르도 와인병에 담는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때 병을 천으로 가린다 해도 손으로 잡는 순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대체로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서 준비한다.
<부르고뉴 와인병>
직각 어깨를 자랑하는 보르도 와인병과 달리 부르고뉴 와인병은 매끈한 라인을 자랑한다. 우아하고 향기로운 피노 누아와 닮은 모양이다. 피노 누아, 가메, 샤르도네, 알리고테 모두 같은 병을 사용하고 화이트 와인도 녹색 병에 담는다. 부르고뉴와 가까운 론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병을 사용한다.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등을 블렌딩 하는 꼬뜨 뒤 론이나 샤토네프 뒤 파프, 시라 100%의 꼬뜨 로띠와 에르미타즈 그리고 비오니에로 만든 화이트 와인 등이 부르고뉴 와인병과 비슷하다.
미국, 호주, 칠레 등 타 지역에서도 부르고뉴나 론의 품종이라면 같은 모양의 병을 사용한다. 이는 그 지역의 전통을 존중하며 와인을 만들고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와인역사가 짧은 신대륙에서 보르도 와인병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와인의 명성에 기대서 자기네 와인의 우수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남부 론에 위치한 샤토네프 뒤 파프의 경우는 병을 마케팅 수단으로 영리하게 잘 사용한 예다. 14세기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 머무르게 되었을 때 가까운 샤토네프 뒤 파프는 교황의 새로운 휴양지가 되었다. 또한 와인을 교황청에 제공하게 되면서 와인의 품질 또한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래서 교황의 와인이란 의미로 와인 병에 교황관을 양각으로 새겼다. 와인마다 디자인은 다를지언정 교황관의 양각이 없는 샤토네프 뒤 파프는 없다. 선물 받은 와인병에 교황관을 양각으로 새겨진 샤토네프 뒤 파프라면 비싸고 품질 좋은 와인으로 보면 된다.
<알자스 와인병>
독일과 프랑스가 치열하게 영토분쟁을 벌였던 알자스 지방은 가까운 독일의 영향을 받아 와인병도 목이 긴 플루트 스타일이다. 프랑스 타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모양이다. 리슬링, 피노 그리, 게뷔르츠트라미너, 뮈스카, 실바너, 피노 블랑과 같은 화이트 와인 품종과 레드 와인 품종, 피노 누아 모두 같은 병을 사용한다. 병만 보면 독일 와인과 헷갈릴 수 있다. 이런 플루트 병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사용한다. 그뤼너 벨트리너 품종이 대표적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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