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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와인들(2)

앨리스앤 2020. 12. 23. 17:17

 

앞이 잘 보이지 않은 긴 터널 같았던 2020년이 서둘러 우리의 곁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워만 할 수 없는 올 한해, 순간순간 행복하게 해줬던 와인들을 정리해봅니다. ^^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4. 올해의 근사했던 레드 와인 -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 화이트 와인에 이어서 올해의 레드 와인은... 두 개를 정했어요. 별로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와인에 관해선 까다로운 편이에요. 사실 와인은 매일 마셔도 부담없는 맥주 같진 않잖아요. 맥주는 한번 마셔볼까 하고 살 수 있지만 와인은 아니죠!!!!!!!!!!!!! 비싼 아이들도 많고 용량도 많아서 혼자 마시기 보단 모임이나 친구랑 마시게 되는데, 그때 와인이 뭐랄까...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라면 분위기는 완전 얼어붙어요. 그래서 모임에 와인을 가져가는 게 너무너무 신경쓰여요.

 

거두 절미하고 레드 와인이라면 피노 누아가 첫 번째 픽이에요. 좋아하거든요. ^^ 속상하게도 피노 누아는 비싸요. 저렴이도 잘 없지만 있어도 그냥 그래요. 동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19,000원짜리 피노 누아는, 솔직히 별루에요. ㅠㅠㅠㅠ 같은 값이면 화이트 와인이 훨~~~~씬 좋아요. 또 다른 길로 빠져버렸네요.

암튼 그래요, 피노 누아에 맛 들이면 가산탕진의 길로 들어섰으니 모두들 조심해야 합니다. 두 와인 중 하나는 커치 맥도걸 랜치 소노마 2014 Kutch McDougall Ranch Sonoma(위 사진) 입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사온 와인이에요. 국내에도 가끔 들어오는 와인 같았는데 하도 평이 좋아서 할인하는 사이트를 찾아 찾아 샀어요. 이 와인을 마셔보고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섬세함이 느껴져서 놀랐죠. 라스베리와 크렌베리의 향이 나면서 둔탁하지 않고 유연한 타닌이 부담 없어요. 아름다운 와인이에요. 같이 마신 지인도 부르고뉴 피노 비슷하다고 칭찬했어요.

 

두 번째 와인은 도멘 드 라 부즈레 부조 끌로 뒤 프리에르 2010 Domaine de la Vougeraie Vougeot Clous du Prieure(위 사진) 입니다. 뭐 이름이 이렇게 길까요? 부즈레는 부르고뉴에서 유명한 부자 와이너리입니다. 부조 마을에 있는 클로 뒤 프리에르 포도밭은 부즈레 소유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사실 이 와인의 이른 빈티지를 마셔보지 못해 비교하긴 힘들지만 2010 빈티지는 너무 놀라울 정도였어요. 마실 시기도 딱 맞았던 거 같고요, 농밀하고 부드러운 붉은 과일의 풍미가 입 안을 압도하고 복합성과 균형감이 넘 좋아요. 아무 걸림없이 매끄럽게 넘어갑니다. 여운에서 딸기 맛이 나서 끝까지 행복하게 해줍니다. 좀 비싼 가격에 샀고 5년 정도 보관했어요. 

 

5. 올해 가성비 좋은 와인 - 많이 고민했던 와인입니다. 올 가을에 상당히 고퀄의 와인을 구했는데, 세일 가격이라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라 스피네따 테레 디 피사 2015 La Spinetta Terre di Pisa 2015 입니다. 라 스피네따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유명한 생산자랍니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모스카토 다스티부터 토스카나에서도 여러 와인을 생산하고 있어요. 레데 디 피사는 산지오베제로 만드는데 무슨 일인지 큰 폭으로 세일해서 몇 병 샀어요. 잘 익은 과일의 풍미가 부드럽게 녹아 있어요. 묵은 향도 적당하고 단순하지만 맛있어요. 이런 유명한 와이너리의 와인이 놀라운 가격으로 세일하면 빨랑 집어와야죠. 세일할 땐 이런 아이들을 목표로 레이다를 켜야 합니다. 

 

6. 올해 가장 당황스러웠던 와인 - 앞서 소개한 도멘 드 라 부즈레의 부조 끌로 뒤 프리에르 블랑 2009 Domaine de la Vougeraie Vougeot Clous du Prieure Blanc 입니다. 샤르도네 100%로 만들어요. 2009 빈티지라 어느정도 익은 느낌을 기대했는데..... 넘나 신선했어요. 마치 최근 빈티지의 와인 같이 레몬, 라임, 사과의 향이 느껴졌어요. 같이 마셨던 분들도 당황했는지 뭐라 말을 못했어요. 이 와인이 이상했다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상큼상큼하니까 놀란거죠. 그랬다고요.

 

BBR의 리오하 크리안자, 돼지고기 목살구이와 잘 어울린다. 

7. 올해 자주 마신 저렴이 와인 - 시음회에서 마셔보고 협찬받았던 와인인데, 부담없이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 내 돈 주고 사옵니다. 바로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Berry Bros & Rudd (BBR)의 더 와인 머천트 The Wine Merchant's입니다. 일단 가격이 만원대에서 시작해요. 좀 비싸다 싶은 와인도 있지만 시중에서 파는 같은 지역의 와인에 비하면 혜자스럽죠.

BBR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유통회사입니다. 300년 이상 전세계의 수많은 생산자들과 거래했어요. 더 와인 머천트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와인'을 목표로 각 지역의 생산자들과 손잡고 와인을 만들어 저렴하게 공급합니다. 한마디로 oem 방식이라고나 할까요. 보르도 클라레가 인기 있고 화이트 와인들은 참 좋습니다. 가끔 세일하는 품목도 있어서 기분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습니다. 

 

8. 올해 내게 최고의 와인 - 와인 종류에 상관없이 올해 제일 좋았던 와인을 꼽으라면 그라프 소비뇽 Graf sauvignon 입니다. 오스트리아 내추럴 와인이고요 소비뇽 블랑으로 만들었는데 전혀 소비뇽 블랑의 느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부싯돌, 흰 후추 같은 스파이스, 연기, 약간의 꿀의 향도 납니다. 엄청 복잡미묘해요. 잘 만든 뫼르소에서 나는 참깨 볶는 향이 마지막 한 모금까지 이어집니다. 다시한번 맛보고 싶은 와인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부디 무탈한 연말연시가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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